2019년 1월 23일 수요일

<썩프펌>촉새당교주 유시민으로 안 된다는 현실적 이유 !! [8]

<썩프펌>촉새당교주 유시민으로 안 된다는 현실적 이유 !! [8]
주소복사 조회 134 11.03.20 00:02 신고신고
번호 244357  글쓴이 화씨911  조회 3326  누리 25 (249,274, 44:19:68)  등록일 2011-3-17 20:45

‘지금의 유시민’으로 안 된다는 현실적 이유 (1)
대통령은 개인이지만 정권은 세력이 잡는다
(서프라이즈 / 화씨911 / 2011-03-18)

지금의 유시민은 아니다. 나는 이런 제목으로 왜 지금의 유시민은 안 된다는 것인지 그 이유를 몇 차례에 걸쳐 연재하려고 한다. 물론 이 글이 서프에 접속하는 수많은 유시민 지지자들로부터 마질을 당해 해우소로 빠지더라도 이에 굴하지 않고 연재를 하려고 한다. 이제 그 1부를 시작한다.

1부 - 대통령은 개인이지만 정권은 세력이 잡는다

정치는 정치인이 하지만 권력은 세력이 잡는다. 그런데 유시민에겐 권력을 쟁취할만한 세력이 없다. 서프의 유빠들은 노무현도 2002년 민주당 경선에 출마할 당시 단기필마였다고 들이댄다. 그런데 당시의 노무현과 현재의 유시민이 다르다는 점은 인정하지 않는다.

우선 당시의 노무현은 엄연히 직전 2000년 선거에서 115석을 당선시킨 집권여당의 후보경선에 출마했었다. 헌데 당시 국회의 총 의석수는 지금과 같은 299석이 아니라 273석이었다. 그렇더라도 115석의 여당으론 단독과반은 되지 못했다. 하지만 공동여당이었던 자민련이 17석에다 친여 무소속이 5명이었던 관계로 친여권 의석수가 과반인 137석을 넘기는 정국주도 정당이었다. 

즉 노무현 후보는 이런 현실적 힘을 가진 정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에 천정배 임종인 의원 정도였지만 소수의 지지의원도 있었고, 민주당 호남조직 조차도 탈호남 후보에 대한 열망이라는 가능성은 가지고 도전했다. 

현재 유시민과 그 지지자들은 이런 현실적인 문제에 애써 눈을 감는다.

현 의석 수 제로인 국민참여당, 차기 총선에서 유시민이나 참여당의 힘만으로는 극소수만 원내진출이 가능할 정도의 미약한 힘을 가진 세력이 곧 유시민과 그 지지세력이다. 그런데 지금 유시민 지지자들은 차기 총선까지 유시민의 지지율이 올라가면 세력은 당연히 생길 것이라고 주장하거나 믿는다. 즉 유시민 본인의 바람대로 원내 20석 정도는 얻을 것이란 기대와(이 기대는 그러나 야권연대라는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이뤄질 수 없는 기대다.)그럴경우 민주당 등 야권 타당의 현역의원 합세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즉 이들은 유시민의 지지율은 계속 오를 것이고 내년 총선 후까지도 유시민의 지지도가 야권 1위를 기록하고 있으면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 의원들이 탈당하여 유시민당에 가입하고 그래서 현실적인 힘이 유시민에게 모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사쿠라다. 

현재 유시민 지지자들은 민주당의 정동영을 한나라당 박근혜보다 더 미워한다. 이는 손학규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정동영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노무현을 배신한 배신의 아이콘이며, 손학규 또한 한나라당에서 3등을 하다가 단물을 빨기 위해 민주당으로 피난 온 철새라는 이유로 한나라당이라는 적보다 더 싫어한다. 
또 지난 2002년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이 바닥을 칠 때 후보단일화를 주장하며 노무현 후보를 흔들다 민주당을 탈당했던 후단협 세력을 정치 쓰레기라고 인간취급도 하질 않는다. 그래서 김민석을 김민새라고 부르며 쓰레기 취급을 한다.

그렇다면, 만약 유시민이 차기 총선이 끝난 뒤에도 지지율에서 야권 1위를 달릴 때 민주당을 탈당하여 유시민 세력에 가담한 민주당 출신 정치인들을 뭐라고 부르며 받아들여 세력을 키운다는 말인가? 유시민의 정치적 이념을 따랐다고 할까? 그래서 그들의 합세를 구국의 결단이라고 할까? 어떤 이유를 붙여도 목적 자체가 야권에서 당선 가능성이 가장 높은 후보를 쫒은 철새임에도 그들은 철새가 아니고 개혁정치인이라고 할까?

김영삼은 자신이 평생을 타도의 대상이라고 미워하던 군부 쿠데타 독재정치 세력과 야합했던 3당합당의 명분을 구국의 결단이라고 말했다. 이 덕에 대통령 5년을 해먹었지만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민주투사로서의 기록에 김영삼의 이름은 빠졌다. 지신의 정치이력에 영원히 지울 수 없는 검은 때를 묻힌 것이다. 지금 누구도 대한민국 민주주의 투쟁 역사와 민주주의 정부 수립의 역사에서 김영삼을 끼워넣지 않고 있음이 이를 증명한다.

김민석과 후단협 정치인들 또한 지금까지도 자신들의 당시 행위가 정권재창출을 위해 눈물을 흘리며 했었던 결단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현재 그들의 말을 신뢰하는 역사가가 있으며 심지어 일반 범부라도 있는가? 없다. 

내년 총선 후 민주당 후보경선에서 민주당의 차기 대통령 후보가 생겼을 때도 유시민이 지지율 1위를 계속 달리고 있다면, 그래서 민주당 소속 의원 중 야권의 정권탈환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민주당을 탈당하고 유시민 세력인 참여당에 동참한다면 그들은 개혁세력의 정권탈환을 위해 결단한 정치인인가? 그래서 그들을 용납하고 받아들일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당신들은 사쿠라다. 

국민들은 정치적 균형을 위해 여야의 균등한 힘을 바란다. 우리 국민들은 현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이 거대한 의회권력을 갖고 의회를 날치기를 통한 통법부로 만드는 것도 용납하지 않지만, 여소야대로 정치권력이 부유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김대중이 집권했던 당시 여당은 원내 79석의 새정치국민회의와 35석의 자민련이라는 공동여당이었다. 그런에도 당시 과반에 훨씬 못 미친 여소야대였다. 그래서 총리인준을 6개월씩이나 받지 못하는 정치적 혼돈을 겪었던 국민들이다. 

또 원내 115석의 여당을 붕괴시켜 새로운 여당이라고 창당했던 원내 46석의 열린우리당은 힘이 없어서 대통령 탄핵을 막지 못했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은 그 직을 3개월 씩 정지당했으며 이런 혼란의 3개월을 지켜본 국민들이다. 그래서 우리 국민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야의 균형적 의석을 바라고 있다.

그런데 유시민 뜻대로 참여당이 원내 20석이 도달된다 해도, 또 그 지지세력의 바램대로 권력의 양지를 쫒은 소수의 철새들이 가담한다 해도 유시민이 대통령이 된다면 역사상 가장 소수의 여당이 될 것이다. 

반면 권력을 잃은 한나라당은 이전의 한나라당보다 더욱 극심한 반대세력으로 강고해질 것이다. 그리고 참여당에 참여하지 않은 민주당 세력 또한  결코 '유시민 대통령'의 우군으로 돌아서진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야당 한나라당과 남은 민주당 세력을 새로운 여당이 견인할 수 있겠는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은 이전 열린우리당 창당을 통해 여실히 증명했다.

따라서 이같은 과거사를 딛고 살아 온 우리 국민들은 아무리 유시민이 유능한 정치인이라고 해도 대통령으로 선택하지 않는다. 이점 하나만으로도 유시민은 대통령이 될 수 없다. 유시민과 그 지지자들은 인정하지 않더라도 이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2부에 계속) 

‘지금의 유시민’으로 안 된다는 현실적 이유 (2)
대선승리는 표의 확장성과 응집력에 달렸다    
(서프라이즈 / 화씨911 / 2011-03-18)






두번째 글에 들어가기 전에 저의 이전 글에 댓글로 관심을 표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를 드리며 일일이 답변을 드리는 것보다 반론을 제기하신 몇 분들의 글에 간단하게 답한 뒤 본론을 이어가겠습니다. 물론 어이없는 댓글은 패스하면서 답합니다.


1. 1111이라는 분은 긴 글 말미에 “의원 개개인이 다른 쪽으로 투항했던 2002년의 경우보다는 당대당 통합이나 어느 한 쪽의 흡수와 같은 2007년 형태로 벌어질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쉽게 가치판단을 하기가 어렵다고 생각됩니다.”라고 쓰셨습니다.


답변 : 2002년 후단협처럼 의원 개개인의 투항도 2007년의 흡수통합도 현재의 상황에서 가치판단을 함께하는 분들이 더 많다는 사실입니다. 즉 정동영 등의 열린당 탈당과 대통합신당으로의 해쳐 모여에 대한 현재 유시민 지지자들의 스텐스가 배신자라는 딱지입니다. 즉 침몰직전의 함선에서 누구 먼저 뛰어내리느냐라는 시합에서 정동영이 깃발을 들었고 그래서 그는 배신자라는 것이지요. 결론적으로 이미 유시민 지지자들은 가치판단을 해버리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2. 대조영이란 분은 댓글에서 “현상황을 가정해 대선을 논한다면 어느 누구도 대통령이 될수 없다는 야그네. 친박과 친이의 관계를 보더라도 박양은 현 싯점에서 국회다수파이던가.”라고 합니다.


답변 : 이 논리는 억지에 불과합니다. 박근혜는 당내 소수파이지 한나라당과 다른 당이 아닙니다. 지금도 열혈 박근혜 지지자들은 한나라당이란 파선직전의 함선에서 탈출하라고 성화를 댑니다. 그러나 박근혜는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세력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입니다. 저는 앞의 글에서 같은 맥락으로 노무현도 단기필마이지만 새천년민주당이란 세력 안에서 대권후보를 쟁취했다고 썼습니다. 그 점이 유시민과 다른 점입니다.


3. 초객이란 분은 댓글에서 “님 주장 처럼 그렇게 간단하고, 하찮은 유시민이라면 왜 서프가 이 난리인지 너무 궁금하네요.”라고 쓰셨습니다.


답변 : 서프라이즈가 대한민국의 전부를 통괄하고 있다는 뜻인지...서프는 접속자 수 일일 몇천 명 수준의 정치웹진일 뿐입니다. 대한민국 유권자는 3900만이구요. 이중 서프를 아는 사람이 몇퍼센트일까요? 또 이런 작은 정치웹진 사이트에서조차 유시민 지지자가 많은 것 같지만 실상 난리를 치는 유시민 지지자들은 소수입니다.


4. 무위자연이란 분은 “노무현 대통령이 세력이 있어서 대선에서 승리 했나요? 국회의원선거는 몰라도 대선은 다릅니다.”라고 썼습니다.


답변 : 노무현 대통령의 세력에 대한 내용은 이전 글에서 민주당이란 그릇을 갖고 있었다고 썼습니다. 그리고 그 점이 유시민과 다르다고 했지요. 어젠다 선점도 비전제시도 최소한 국민들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세력을 쥔 쪽에서 제시해야 합니다. 박찬종도 대선후보 지지율 1위일 때 나름 어젠다를 제시하고 비전도 제시했으며 장기표도 소수의 리더였지만 어젠다도 제시하고 비전도 제시했습니다. 답변은 이쯤에서 마치고 본 글 이어가겠습니다.


2부 - 대선승리는 표의 확장성과 응집력에 달렸다

국민직선제가 부활된 지난 1987년 대통령 선거에서부터 2007년 대선까지 줄기차게 흐르는 지역주의 투표심리는 비록 그것이 올바른 현상은 아니라도 현실적인 문제이므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작금에 이르러서는 영남=보수세력, 호남=개혁세력이라는 이상한 편가르기까지, 지역과 정치이념을 일관시한 분류가 일반화하고 있다. 

그리고 최소한 금세기 20년 이내에는 이 같은 현상에 깨지기는 힘들 것이며 이런 현상이 서서히 균열을 보이더라도 완벽한 평균치에 이를 수는 없다는 것은 정치공학적 판단이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이런 현상을 사실로 인정하면서 다음 대선을 준비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유시민 현상을 분석하면 지금의 유시민으론 안 된다는 판단 정도는 쉽게 할 수 있다. 이런 주장에 대해 유시민 지지자들은 그렇다면 영남카르텔을 깰 야권후보가 유시민 말고 또 있느냐고 들이댈 것이다. 하면 유시민은 영남카르텔을 깰 수 있을까? 아니다. 지난 총선의 유시민의 대구득표, 그것도 민주당 후보가 아닌 무소속으로 출진한 결과가 그 답이다. 

그래서 유시민이든 누구든 개혁세력 안에서 한나라당 정권을 끝장내고 다시 개혁세력이 정권을 얻기 위해서는 지난 대통령 선거 역사에서 표의 흐름에 대한 과정을 더듬어보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이다.

일전에 어떤 댓글에서 주장했지만 한나라당을 모체로 하는 영남지역을 포함한 국내 보수세력의 득표력은 최소 900만여 표이다.

이는 1987년 총 유권자가 2500여만 명일 당시에 영남을 김영삼과 노태우가 양분했음에도 당선자 노태우가 828만여 표를 획득했다는데서 알 수 있다. 또 김영삼의 삽질과 이회창의 최대약점이 노출된 1997년 선거 당시 유권자 3200여만 명일 때 이회창은 이인제에게 490만여 표를 할애하고도 990여만 표를 획득했다는데서 그 답을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개혁세력의 최소 득표력은 얼마나 될까? 1987년 김대중은 김영삼과 일정부분 개혁세력의 표를 양분했으므로 당시 김대중이 획득했던 611만여 표만이 개혁세력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당시 김영삼의 부산 112만여 표, 경남 92만여 표, 부산경남의 합계표가 200만 표였다. 그리고 현재도 이 표들은 한나라당 표로 분석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반면 김영삼의 수도권 득표수는 서울 160여만 표, 경기 인천의 100여만 표, 합계 260여만 표였다. 하지만 이를 전부 보수세력의 표라고 할 수도 없지만 이 표들이 또 다 개혁세력의 표라고 하기도 어렵다. 

따라서 당시의 절반 정도가 아직까지 개혁세력의 표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는 1987년 대선에서 김대중이 서울 인천 경기 합계표가 240만여 표였던데 비해 92년 야권 단일후보로 출마했을 때 320여만 표를 획득한데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따라서 당시 김대중이 전국적으로 얻은 800여만 표가 실질적 야권표가 아닌가 한다. 당시 선거에서 보수세력은 정주영이 388만여 표를 잠식했고 박찬종은 151만여 표의 개혁세력 표를 잠식했다고 보면 그렇다.

또 현 야권세력이 역대 선거사상 최대치를 모았던 선거가 2002년 노무현 후보의 1200여만 표이며 최소득표율을 기록한 2007년 정동영 후보의 600여만 표였다. 이로 보면 결국 개혁세력의 득표력은 최대치와 최소치 사이의 표차가 딱 절반 수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현 여권의 최대치는 2002년 이회창의 1100여만 표와 현 이명박 대통령의 1100여만 표이며 최소치는 1997년 이회창의 990만여 표다. 즉 보수진영의 최대:최소치 사이는 100여만 표 남짓이란 얘기다. 결국 이처럼 보수진영과 개혁진영이 표의 응집력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것이 현 여권세력과 야권세력의 현주소다. 

따라서 차기 대통령 선거에서 야권이 승리를 하려면 지지세의 응집력이 최대의 화두이며 이를 과연 어떤 후보와 세력이 감당할 수 있느냐다. 

여기서 나는 지금의 유시민이 가지고 있는 표의 확장성과 응집력에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2008년 국회의원 선거에서의 유시민 대구득표력이야 말할 나위가 없으나 지난 해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보인 유시민의 경기지사 득표력은 유시민 자신이나 그 지지자들, 특히 김동렬을 비롯한 서프의 글쟁이들까지 표의 응집력에서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를 여기서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유시민 책임일 수도 있고 그 지지자들 주장대로 경기도 거주 호남세력이 유시민을 비토했으니 그들 책임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말을 액면 그대로 수용하더라도 표의 확장성이나 응집력의 문제는 인정해야 한다. 어쨌든 후보자 유시민이 지지표를 확장시키거나 응집시키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다. 지난 대선에서 정동영의 득표율은 거론할 가치가 없더라도 차기 대선에 출진할 후보나 그 후보를 출진시킬 세력은 개혁세력의 지지자 확장이나 응집력에 대한 명쾌한 분석이 필요하며 그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정동영의 저조한 득표력에 대한 책임은 일단 후보인 정동영 본인에게 있다. 하지만 정동영을 비토했던 개혁세력에게도 문제가 있었다는 점 또한 유시민의 경기지사 낙선이 호남표 때문이라는 논리와 유사하게 볼 수 있으므로 인정해야 한다, 

지난 17대 대선의 득표율, 이명박 11,492,389 vs 정동영 6,174,681, 여기에 3위와 4위를 차지한 이회창 3,559,963표 vs 문국현 1,375,498표, 이를 산술적인 계산으로만 본다면, 보수 15,052,352표 vs 개혁 7,550,179표로 나타난다. 

즉 이명박 48.4% +이회창 15.0% : 정동영 26.0% +문국현 5.8%를 범보수와 범개혁으로 나눈다면, 범보수 63.4%,, 범개혁 31.8%다. 물론 권영길 후보의 3%대 득표까지 합해도 개혁진영의 득표율은 35%가 안 된다. 즉 정동영의 처참한 득표율만 문제가 아니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노무현 정부 5년 동안 유권자 다수가 모두 보수로 변한 것일까? 아니다. 현재 거의 모든 분석가들이 내놓는 분석내용으로 보면 지난 대선은 이념적 대결도 지역대결도 아니었다. 절대로 한나라당을 찍을 수 없는 유권자들을 제외한 다수의 유권자들이 묻지마 투표를 한 결과다. 5년 전 노무현 후보를 찍었던 다수의 유권자들이 노무현 정부에 실망하여 이명박과 이회창에게 갔고 정동영에게 실망한 참여정부 지지세력 중 상당수가 기권을 통해 투표율을 떨어뜨린 결과의 함축물이 대선의 결과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우리가 중요하게 집어야 할 것이 바로 투표율이다. 지난 대선을 제외하고는 역대 대통령 선거의 투표율이 평균 71%였다. 하지만 지난 대선은 역대 평균치 보다 무려 7%나 적은 64%로 나타났다. 전체유권자 3770만여 명의 7%라면 무려 250여만 명이나 된다. 이중 거의 전부가 범 개혁진영 유권자였다면 무리한 계산일까? 아니다. 

범보수진영은 지난 대선에서 잃어버린 10년이라는 구호로 정권탈환에 목숨을 걸었었다. 더구나 이회창의 출마로 보수표 분열에 대한 우려 때문에 더 많은 유권자들이 투표에 참여했었다. 반면 개혁진영의 유권자들은 노무현 정부에 대한 실망과 열린우리당의 해체와 대통합민주신당 창당 등에 등을 돌리며 투표참여에 시큰둥했다. 이것이 핵심이다. 이렇게 잃어버린 200여만 명이라도 투표에 참여했더라면 이에 따르는 상승효과까지 더하여 지더라도 900여만 표 가까운 득표는 올릴 수 있었을 것으로 본다. 

또 있다. 지난 1987년 대선부터 2007년 대선까지 2002년의 대선만을 제외하고는 100여만 표 이상을 획득한 3위 이하 낙선자는 언제나 있었다. 1987년 대선의 김대중 611만여 표, 김종필 180여만 표가 그렇고, 1992년 대선의 정주영 388만여 표, 박찬종 151만여 표가 그렇다. 또 1997년 대선의 이인제는 무려 492만여 표를 획득, 양김분열로 3위가 된 김대중의 87년 득표력에 버금가는 득표력을 보이기도 했다. 

이는 지난 대선에서도 마찬가지다. 보수세력 표를 분열시킨 이회창의 355만여 표, 개혁세력 표를 분산시킨 문국현의 151만 여 표가 있었다. 하지만 당선자를 바꾼 3위는 김대중과 이인제 정도였으며, 나머지 후보들은 의미 있는 득표력을 보이기는 했어도 당선자를 바꿀 정도는 아니었다. 결국 표의 확정성과 응집력이 확실하다면 제 3의 후보가 있더라도 당선자를 바꾸지는 못한다는 것이 자료로 증명하는 것이다. 

일단 위의 분석으로 보면 현 여권으로 대변되는 범 보수세력은 분열했을 경우라도 보수계열 1위 득표자 최소득표수는 900여만 표, 단합했을 경우 최대 득표수는 1500여만 표라는 것이 나타난다. 하지만 이들 모두를 이념적 보수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중 최소 200여만 표는 집권자를 통한 개인의 이익을 기대하는 표로 봐도 무방하다. 지난 선거에서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실망하고 이명박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꿈꿨던 이들이 그들이다. 

반면 현 야권으로 대변되는 범 개혁세력의 최소 득표수는 분열했을 경우 600여만 표, 단합했을 경우 최대치가 1300여만 표로 나타난다. 물론 이들 중 또 상당수는 이념적 투표행위보다 개인주의적 투표행위자가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여권이나 야권 모두 실제로 이념적 성향에 따른 득표 최대치는 각각 1200만여 표 정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는 차기 대선에서 예상되는 유권자 3900여만 명, 역대 대선 투표율 71%로 대입하여 총 투표자 2700여만 명으로 분석했을 때 양측의 2400여만 표 외에 나머지는 군소후보에 대한 투표행위로 이어질 것이다. 

결국 이 분석결과로 보면 양측이 모두 단합했을 경우 범 개혁세력은 범 보수세력과 매우 치열한 접전을 치를 것이다. 지난 대선을 제외한 지금까지의 모든 직선제 대선이 그랬던 것처럼...따라서 개혁세력의 대선승리를 위한 최종목표는 보수는 분열해야 하고 개혁세력은 단합해야 한다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지금의 유시민으로 과연 이 상식적인 것이 가능한가? 나는 지금의 유시민으론 불가능하다는데 빙점을 찍는다. 여기서 주장하는 ‘지금의 유시민’이라는 단어가 매우 중요하다. 그 이유는 다음 편에 제시하겠다. (3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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