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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간 힘들게 살다 결혼
뇌종양·대장암 진단 받아
“가족과 행복하게 살고파”
“죽기 전에 꼭 찾아야 합니다. 한 번이라도 엄마를 불러보는 게 제 마지막 소원입니다.”
8세 때부터 20년간 남의 집에서 현대판 노예생활을 한 여성이 33년 동안 떨어져 지낸 가족을 찾고 있다. 사연의 주인공은 임미숙씨(41·포항시 남구 동해면).
임씨가 가족과 헤어진 것은 1979년 모 고위공무원의 가정으로 팔려가다시피 하면서부터다. 9세되던 해 집주인이 서울로 발령나면서 임씨도 서울로 갔다.
임씨는 “오죽했으면 고아원으로 보내달라고 했겠나. 집주인 아주머니가 자신을 ‘어머니’라 부르라고 하면서도 학교는 보내주지 않았다. 여러 차례 간청을 했지만 번번이 거절했다”고 아픈기억을 더듬었다. 임씨는 29세 되던 해 주인집의 소개로 만난 포항의 중소기업에 다니던 A씨와 결혼을 하고 나서야 그 집을 벗어날 수 있었다.
임씨는 “결혼만이 유일한 탈출구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집을 나왔지만 임씨는 주인집으로부터 한푼도 받지 못했다. 임씨를 처음 맡긴 사람에게 이미 대가를 치렀다는 이유였다.
결혼 후 행복한 인생을 꿈꾸던 임씨에게 또다시 고난이 찾아왔다. 2006년 뇌종양 판정을 받은 것이다. 가정부 생활을 하던 시절부터 눈에 통증이 있었지만 증세가 악화되면서 오른쪽 눈은 아예 감겨버렸다. 뇌종양 판정을 받고서야 눈의 통증이 그 후유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치료를 받지 못해 병을 키운 것이다.
여기에다 2008년엔 남편마저 병으로 세상을 등졌다. 더구나 지난해 대장암 판정을 받은 임씨는 두번이나 수술대에 누워야 했다. 임씨는 “그때 죽기 전에 가족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세무사를 하고 있는 주인집에 가족을 찾게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허사였다.
만날 수 있을지조차 모르는 어머니를 향해 그는 “정말 엄마를 만나 보고 싶고, 잘 계신지 궁금하다”며 “더 이상 내 삶을 포기하지 않고 가족을 찾아 남은 인생을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호소했다. 연락처 010-8033-7207
포항=김상현기자 shkim@yeongnam.com
딸이 돌아왔다
우먼센스 | 입력 2013.03.08 09:48
안정희(가명)씨는 10년을 한숨 속에서 살았다. 하나밖에 없는 딸이 어느 날 사라진 것이다. 당시 딸은 대입 수험생이었다. 일요일 아침, 안정희씨는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웬 남자가 초인종을 눌러 딸을 찾았다.
"선주 남자친구예요. 잠깐만 밖에서 할 이야기가 있어서요."
잠자고 있던 딸을 깨우자 딸은 "금방 들어올게요"라는 말을 남기고 잠에서 덜 깬 얼굴로 부랴부랴 집을 나섰다. 그날 이후 딸은 행방이 묘연했다.
"선주 남자친구예요. 잠깐만 밖에서 할 이야기가 있어서요."
잠자고 있던 딸을 깨우자 딸은 "금방 들어올게요"라는 말을 남기고 잠에서 덜 깬 얼굴로 부랴부랴 집을 나섰다. 그날 이후 딸은 행방이 묘연했다.
남자친구라는 말만 들었지 이름도 연락처도 어떤 관계인지도 묻지 못했고, 딸에게도 그때까지 남자친구에 대해서 듣지 못했던 터라 딸을 찾을 길이 없었다. 경찰에 수차례 실종 신고를 하려고 했지만, '남자친구를 따라서 가출한 것'이라며 실종 신고조차 받아주지 않았다.
안정희씨는 전국을 돌며 딸을 찾아 헤맸다. 하지만 딸의 흔적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가슴이 먹먹할 때마다 점집을 찾았는데 대부분 "인연을 따라간 것이니 마음을 비우고 기다려라"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말을 해주었다. 딸의 생일에도, 졸업식 때도, 체육 특기생으로 미리 입학 허가를 받아둔 대학교 입학식 때도, 명절 때도 안정희씨는 눈물 속에서 시간을 보냈고, 딸이 돌아오길 기원하는 108배를 올리며 눈물과 한숨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혹시 딸이 찾아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사도 가지 않고, 가족 모두 전화번호도 바꾸지 않았다.
그렇게 더딘 시간이 흐르고 5년이 지났다. 어느 날 기적처럼 딸이 찾아왔다. 네 살 된 남자아이와 갓 돌이 지난 여자아이를 데리고서 말이다. 딸의 말에 따르면 자기를 찾아온 '남자친구'라는 사람을 만나러 잠깐 집 밖에 나갔다가 납치되다시피 부산으로 가게 되었고, 여관에 끌려가 구타와 함께 성폭행을 당한 뒤 감금됐고, 그 남자가 얻어둔 옥탑방 월셋집에서 외부와 연락이 차단된 채 지내게 됐다고 한다. 두어 달 뒤부터는 노숙 생활을 했다. 공원에서 잠을 자고 공원 쓰레기통에서 썩은 토마토와 먹다 버린 포도 등을 뒤져 먹으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화장실에 갈 때조차 따라다닐 정도로 감시는 계속됐다. 무직으로 지낸 그 남자는 나중에 성매매까지 시켰다. 채팅으로 남자를 여관으로 유인해서 10만원을 받고 성매매를 시켰고, 그런 다음 남자를 성폭행범으로 형사 고소하게 한 뒤 남자를 협박해 수백만원을 합의금 조로 받아내서 그 돈으로 생활하곤 했다. 그렇게 집을 떠난 딸 선주는 18세의 나이에 임신을 하게 되었고, 첫아이가 태어나기 두 달 전에 그 남자가 일방적으로 혼인신고도 해버렸다. 첫아이가 태어난 뒤에도 성매매는 계속되었고 성폭행 합의금을 받아내 간신히 생활비를 마련했다.
그렇게 두 아이를 안고 5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 딸이지만 며칠 되지 않아 그 남자와 그의 부모, 시댁 식구들이 몰려와 "왜 여기 와 있느냐"며 마구 행패를 부리고 다시 데려가버렸다. 그로부터 다시 5년 후 영하 10℃가 넘는 한겨울 밤, 딸 선주는 반팔 셔츠와 7부 바지를 입은 채 혼자서 몇 시간을 걸어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온몸은 추위에 꽁꽁 얼어붙은 상태였다. 넋이 나간 선주는 이후 장애 3급 진단을 받았다. 극심한 우울증 환자였고 정신 질환으로 손톱을 물어뜯어 손톱에서는 피고름이 흘렀다.
10년 만에 돌아온 딸은 지난 일을 기억하는 것조차 두려워했다. 아직 서른도 안 된 나이에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경험을 하고 심신이 황폐해져 돌아온 것이다. 딸이 좀 더 용기를 내어 주변에 도움을 청했더라면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비참한 현대판 노예, 성매매를 통한 돈벌이 기계로 전락하지는 않았을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 이 변호사의 어드바이스
선주씨는 남편을 상대로 이혼 및 위자료 청구소송을 하고, 아이들을 양육할 의사와 능력이 있다면 아이들에 대한 친권자및 양육자 지정 청구를 할 수 있다. 납치, 감금, 폭행, 협박, 성매매 알선 등으로 남편을 형사 고소하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다. 모든 부모가 명심해야 할 것은 자녀를 양육할 때 수학 문제 푸는 법이나 예의범절을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예상치 못한 위기 상황이 닥쳤을 때 이를 헤쳐나갈 수 있는 방법과 지혜, 담력을 가르치는 것도 중요한 부모의 역할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 글쓴이 이명숙 변호사는… 23년 경력의 이혼·가사 사건 전문 변호사로 현재 KBS <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 2 > 의 자문 변호사로 활약하고 있다.
기획:하은정 기자 | 일러스트:배선아
안정희씨는 전국을 돌며 딸을 찾아 헤맸다. 하지만 딸의 흔적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가슴이 먹먹할 때마다 점집을 찾았는데 대부분 "인연을 따라간 것이니 마음을 비우고 기다려라"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말을 해주었다. 딸의 생일에도, 졸업식 때도, 체육 특기생으로 미리 입학 허가를 받아둔 대학교 입학식 때도, 명절 때도 안정희씨는 눈물 속에서 시간을 보냈고, 딸이 돌아오길 기원하는 108배를 올리며 눈물과 한숨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혹시 딸이 찾아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사도 가지 않고, 가족 모두 전화번호도 바꾸지 않았다.
그렇게 더딘 시간이 흐르고 5년이 지났다. 어느 날 기적처럼 딸이 찾아왔다. 네 살 된 남자아이와 갓 돌이 지난 여자아이를 데리고서 말이다. 딸의 말에 따르면 자기를 찾아온 '남자친구'라는 사람을 만나러 잠깐 집 밖에 나갔다가 납치되다시피 부산으로 가게 되었고, 여관에 끌려가 구타와 함께 성폭행을 당한 뒤 감금됐고, 그 남자가 얻어둔 옥탑방 월셋집에서 외부와 연락이 차단된 채 지내게 됐다고 한다. 두어 달 뒤부터는 노숙 생활을 했다. 공원에서 잠을 자고 공원 쓰레기통에서 썩은 토마토와 먹다 버린 포도 등을 뒤져 먹으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화장실에 갈 때조차 따라다닐 정도로 감시는 계속됐다. 무직으로 지낸 그 남자는 나중에 성매매까지 시켰다. 채팅으로 남자를 여관으로 유인해서 10만원을 받고 성매매를 시켰고, 그런 다음 남자를 성폭행범으로 형사 고소하게 한 뒤 남자를 협박해 수백만원을 합의금 조로 받아내서 그 돈으로 생활하곤 했다. 그렇게 집을 떠난 딸 선주는 18세의 나이에 임신을 하게 되었고, 첫아이가 태어나기 두 달 전에 그 남자가 일방적으로 혼인신고도 해버렸다. 첫아이가 태어난 뒤에도 성매매는 계속되었고 성폭행 합의금을 받아내 간신히 생활비를 마련했다.
그렇게 두 아이를 안고 5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 딸이지만 며칠 되지 않아 그 남자와 그의 부모, 시댁 식구들이 몰려와 "왜 여기 와 있느냐"며 마구 행패를 부리고 다시 데려가버렸다. 그로부터 다시 5년 후 영하 10℃가 넘는 한겨울 밤, 딸 선주는 반팔 셔츠와 7부 바지를 입은 채 혼자서 몇 시간을 걸어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온몸은 추위에 꽁꽁 얼어붙은 상태였다. 넋이 나간 선주는 이후 장애 3급 진단을 받았다. 극심한 우울증 환자였고 정신 질환으로 손톱을 물어뜯어 손톱에서는 피고름이 흘렀다.
10년 만에 돌아온 딸은 지난 일을 기억하는 것조차 두려워했다. 아직 서른도 안 된 나이에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경험을 하고 심신이 황폐해져 돌아온 것이다. 딸이 좀 더 용기를 내어 주변에 도움을 청했더라면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비참한 현대판 노예, 성매매를 통한 돈벌이 기계로 전락하지는 않았을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 이 변호사의 어드바이스
선주씨는 남편을 상대로 이혼 및 위자료 청구소송을 하고, 아이들을 양육할 의사와 능력이 있다면 아이들에 대한 친권자및 양육자 지정 청구를 할 수 있다. 납치, 감금, 폭행, 협박, 성매매 알선 등으로 남편을 형사 고소하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다. 모든 부모가 명심해야 할 것은 자녀를 양육할 때 수학 문제 푸는 법이나 예의범절을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예상치 못한 위기 상황이 닥쳤을 때 이를 헤쳐나갈 수 있는 방법과 지혜, 담력을 가르치는 것도 중요한 부모의 역할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 글쓴이 이명숙 변호사는… 23년 경력의 이혼·가사 사건 전문 변호사로 현재 KBS <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 2 > 의 자문 변호사로 활약하고 있다.
기획:하은정 기자 | 일러스트:배선아
| 고형석 기자 | kohs@cctoday.co.kr |
지적장애를 가진 40대 여성이 20년 넘게 기초수급수당, 장애수당, 대출금 등 수억 원을 착취당하고 노동은 물론 성매매까지 하는 등 ‘현대판 노예’ 생활을 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돼 충격을 주고 있다.
이 같은 주장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장애인 인권 등 사회적 파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이 여성은 현재 정신병원에 반강제적으로 입원해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고, 이 사건은 현재 경찰에 진정서가 접수돼 조사가 진행 중이다. 대전장애인인권센터 등에 따르면 대전에 사는 지적장애 1급의 A(45) 씨는 25년 전 부모에게 버림받은 뒤 유성의 한 보육원에서 생활했다. 당시 20살의 나이에도 지적장애로 인해 중학교에 다니던 A 씨는 보육원에서 자신을 보살펴주겠다는 B(60대 후반 추정·여) 씨를 만나 함께 생활하게 됐다. A 씨의 현대판 노예생활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B 씨는 A 씨를 대전의 한 냅킨공장과 식당 등에 취업시켰고, 매월 A 씨의 급여는 B 씨의 몫이었다. B 씨는 또 그가 가족이 없고 정상이 아니라는 점에서 기초수급자와 장애등급까지 받게 한 후, A 씨 명의의 통장도 여러 개 만들어 급여와 매월 지급되는 기초수급수당, 장애수당까지 관리했다는 게 인권센터 측의 설명이다. B 씨는 A 씨 명의로 신용카드를 발급받고 캐피탈 등에서 수억 원의 대출도 받았다. 인권센터 측은 또 B 씨가 A 씨에게 폭행을 가하고 성매매까지 시켰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A 씨가 최근 인권센터의 도움을 받을 당시 머리에 신발 굽 등으로 맞은 상처가 있었고, 남성이 악수를 청하거나 어깨를 두드려주는 등 접촉을 시도했을 때 “가슴을 만지면 30만 원을 줘야 한다”는 말을 했다는 것을 폭행과 성매매 의혹의 증거로 내세웠다. 이 같은 A 씨의 현대판 노예생활은 A 씨가 보육원에 있을 당시 자신을 틈틈이 돌봐주던 후원자 C 씨를 최근 우연히 길에서 만나면서 불거졌다. 후원자 C 씨는 “A 씨의 주소를 우리 집으로 옮겨 함께 생활하면서 대출 관련 독촉장 등이 날라오는 점과 통장에 기초수급비 등 잔고가 거의 없는 것을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했다”며 “돈을 제대로 세지도 못하는 A 씨가 많은 돈을 대출받은 점, 최근 이상한 여자가 자꾸 찾아와 자신이 보호자라고 주장하는 모습을 보고 노예 생활을 확신해 인권센터 측에 도움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한편 A 씨가 입원해 있는 정신병원 측은 A 씨를 입원시킨 보호자가 누군지에 대해서는 “알려줄 수 없다”며 확인불가 입장을 밝혔다. 고형석 기자 kohs@cctoday.co.kr 양승민 기자 sm1004y@cctoday.co.kr 또 ''현대판 노예'' 논란…2004년이후 세번째세계일보 | 입력 2006.05.04 07:05
지난 2일 SBS ''긴급출동 SOS24''에 소개된 50년간 학대당한 ''노예 할아버지''에 대한 사연이 시민들의 분노를 사고 있는 가운데, 과거 현대판 노예로 언론에 보도되었던 만덕씨(본명 옥해운)와 기우선씨가 다시 네티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2004년 8월 방송을 통해 알려진 만덕씨의 경우 정신지체 장애자로 18세때 길을 잃고 헤매다가 경북 예천의 한 공장 주인에게 발견돼, 24년동안 온갖 학대와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았었다. 방송후 만덕씨는 가족의 품에 안겼고, 공장주는 경찰의 수사를 받았다.
또 2005년 7월에는 15년동안 서울의 한 재활용센터에서 노예나 다름없는 착취를 당했던 정신지체장애자인 기우선씨의 사연이 소개됐다. 기씨의 경우 환갑의 나이지만 새벽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폐품을 줍는 노동을 하루종일 반복했다. 그러나 가게 주인은 월급은커녕 음식도 안주고 폭행을 일삼았다.
당시 주인은 건물 두 채와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면서도 기씨를 지하창고에 머물게 하고 노동착취와 인권유린을 한 사실이 네티즌들로부터 비난을 받았었다. 네티즌들은 50여년동안 2대에 걸쳐 한 집안에서 노예같은 취급을 받은 72세 이흥규씨 사연을 보며 매년 비슷한 사연이 되풀이되는 것에 대해 이젠 정부나 지자체가 나서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지영이란 네티즌들은 "사회복지사에 대한 철저한 교육이 필요하고, 수십년동안 저와 같은 현대판 노예로 사는 사람들을 이제라도 보상을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PBB란 네티즌은 "나라의 치욕이다. 아마 이는 빙산의 일각이고 더 있을 것이다. 녹을 먹는 공무원들의 각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세계닷컴 유명준기자 neocross@segye.com |
현대판 노예 만덕씨 가족상봉
TV리포트 | 입력 2005.06.07 02:23
‘현대판 노예’로 불렸던 옥해운씨(44)가 가족 상봉 후 10개월 만에 3일 방송된 SBS `세븐 데이즈`를 통해 모습이 공개됐다. 해운씨는 지난해 같은 방송을 통해 ‘만덕’이란 인물로 소개됐다. 당시 방송에 따르면 그는 19살 때 길을 잃고 헤매다 경북 예천의 한 건재상 주인에게 발견된 후 25년 동안 보수도 없이 일을 하며 폭행과 감금 등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았다. 이 기막힌 사연에 수많은 시청자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다행히 방송이 나간 후 가족들이 나타나 해운씨는 25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또한 건재상 주인은 1심에서 3년형을 확정 받고 항소를 제기했다. 그 후 해운씨는 현재 부산 기장에서 어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었다. 취재진이 만난 해운씨의 모습은 예전과 조금 달라져 있었다. 과거 남루한 옷차림에 겁에 질린 얼굴은 찾아볼 수 없었다. 가족들과 어울리며 조금씩 마음을 문을 열어가고 있었던 것. 하지만 과거의 상처를 완전히 떨쳐 내지는 못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멍하니 동네 주변을 서성이거나 낯선 사람들을 경계했다. 또한 혼자서 화를 내며 불만을 터뜨리는 등 심상치 않은 행동을 한다는 것. 이에 대해 어머니는 오랫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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