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질 친일민족반역자 3인]
노덕술[ 盧德述 ] 경상북도 울산 태생
1899∼? 일제시대 고등계 형사·친일파. 민족반역자.
27년간 고등계 사무에 속하는 사상관계사건을 취급하여
일본정부로부터 훈 7등 종 7위를 받았다.
독립운동가들에게 혹독한 고문을 일삼아 악명이 높았다
27년간 고등계 사무에 속하는 사상관계사건을 취급하여
일본정부로부터 훈 7등 종 7위를 받았다.
독립운동가들에게 혹독한 고문을 일삼아 악명이 높았다
박춘금[ 朴春琴 ] 경상남도 밀양(密陽) 출신.
1891(고종 28)∼? 친일파.민족반역자
천자문을 읽었을 뿐 무학이다.
일본인 기업주편에서 노무자를 학대, 압박한 폭력·착취
1923년 9월 1일 관동대지진으로. 동경을 비롯한 일대가 폐허가 되자,
조선인 내습설(朝鮮人來襲說)을 암암리에 유포
조선인학살사건을 일어나게 하였다.
갈고리·죽창·일본도·낫·곤봉 등 온갖 흉기로 무장한 일본인들이
조선인 6,000명 내외를 눈에 뜨이는 대로 학살했던 것이다.
박춘금은 조선인 노무자 300명으로 노동봉사대를 결성하고,
경시총감 아카치(赤池濃)와의 연락하에 시체 처리와
조선인 노무자 색출 및 수용 등의 작업에 종사하였다.
1891(고종 28)∼? 친일파.민족반역자
천자문을 읽었을 뿐 무학이다.
일본인 기업주편에서 노무자를 학대, 압박한 폭력·착취
1923년 9월 1일 관동대지진으로. 동경을 비롯한 일대가 폐허가 되자,
조선인 내습설(朝鮮人來襲說)을 암암리에 유포
조선인학살사건을 일어나게 하였다.
갈고리·죽창·일본도·낫·곤봉 등 온갖 흉기로 무장한 일본인들이
조선인 6,000명 내외를 눈에 뜨이는 대로 학살했던 것이다.
박춘금은 조선인 노무자 300명으로 노동봉사대를 결성하고,
경시총감 아카치(赤池濃)와의 연락하에 시체 처리와
조선인 노무자 색출 및 수용 등의 작업에 종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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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정자[ 裵貞子 ]경상남도 김해 출신
1870(고종 7)∼1951. 민족반역자. 첫이름은 분남(粉南).
일본에서 정자로 개명하고 이토로부터 수영·사격술·변장술 등 철저한 밀정교육을 받았다.
귀국하여 일본세력의 비호를 받고 일본의 한국침략을 위한 반민족적인
부일(附日) 앞잡이노릇을 하여 우리나라의 국권박탈을 위한 막후인으로 활동
1910년 이후에는 아카시(明石元二郎)의 앞잡이로서 한민족 탄압에 앞장섰다.
조선총독부 경무국장 마루야마(丸山鶴吉)의 지령을 받고 간도·상해 등지에서
항일독립투사를 붙잡는 앞잡이노릇을 하였다.
1870(고종 7)∼1951. 민족반역자. 첫이름은 분남(粉南).
일본에서 정자로 개명하고 이토로부터 수영·사격술·변장술 등 철저한 밀정교육을 받았다.
귀국하여 일본세력의 비호를 받고 일본의 한국침략을 위한 반민족적인
부일(附日) 앞잡이노릇을 하여 우리나라의 국권박탈을 위한 막후인으로 활동
1910년 이후에는 아카시(明石元二郎)의 앞잡이로서 한민족 탄압에 앞장섰다.
조선총독부 경무국장 마루야마(丸山鶴吉)의 지령을 받고 간도·상해 등지에서
항일독립투사를 붙잡는 앞잡이노릇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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