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어느 네티즌 글인데 하도 논리적으로 정리를 잘된 글이라 문디색희인 나 자신도 부끄럽지만 우리가 알건 알았야 하고 인정할건 인정하자는 차원에서 생각없이 마무간에 짖고 있는 문디 색희들 교육용으로 올려본다 . ㅋ
닭대가리 색희들아 !
씨짤떼기 없이 분탕질하는데 쥐랄할 시간에 찬찬히 한번 읽어봐라 . 문디 색희들인 우리에겐 좀 쪽팔리고 부끄러운 일이지만 역사적인 팩트이며 누구도 부정 못하는 우리 문디 색희들의 기질이다 . *^^
역사적으로도 경상도는 당나라에 민족을 팔아먹었고 몽고군이 침략하자.. 제일먼저 앞잡이로 돌아서서 30년간 치열하게 항쟁하는 전라도인들에게 칼끝을 들이댔다. 임진왜란시에도 일본군에 가장 적극적으로 협조를 한 지역도 어김없이 경상도였다.
1591년 3월 임진왜란 1년전에 일본에 파견한 통신사 2인이 귀국해서 정반대되는 내용의 보고서를 조정에 따로 제출하는데...전라도 출신인 통신정사(通信正使) 황윤길(黃允吉)은 일본이 반드시 침략을 할것이니..전쟁준비에 만전을 기하자고 하였지만 경상도 출신인 통신부사(通信副使) 김성일(金誠一)은 일본의 침략위협이 전혀 없으니 전쟁준비의 필요성이 없다고 하였다.
결과는 "경상도인 김성일"의 의견이 채택이 되어서 1년이라는 금쪽같은 시간을 아무런 전쟁준비없이 허송세월함으로서 끔찍하고 참혹한 임진왜란을 격게 된다. 전쟁중에도 백전백승을 하고 있던 "이순신장군"의 뒷통수를 처서 막강하였던 조선의 수군(=전라도 수군)을 일시에 전멸케한 자가 "경상도 수군통제사 원균"이였다.
임진왜란 내내...전력을 다해 싸워서 민족을 지켜낸 지역은 전라도였지만 일본군에게 가장 적극적으로 협조한 지역은 경상도였다. 전라도인들이 "한산도 대첩", "명량대첩", "행주대첩", 그리고 "제2차 진주성 전투"등 바다와 육지에서 수많은 전투를 승전으로 이끌기 위해서 홀로 엄청난 희생을 치루고 있을때..경상도인들은 조국의 뒤통수 치기에 여념이 없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경상우도 체찰사가 보고하기를"경상도에서는 요즈음 (임진왜란 중) 앞머리를 밀고 왜옷을 입고 왜적의 앞장을 서서 타도로 진출하여 노략질.방화,및 부녀 겁탈을 무심히 하는 경상도민이 무수히 많습니다. 이들의 소행은 포악하여 오히려 왜인들보다도 흉악한 바가 있습니다. 심지어 이 경상도인들은 충청,전라지방으로 진출하여 노인,아이,부녀자의 수급을 베어 왜적에 진상합니다." [충무공 난중일기中에서...]
밀양부사 공호겸(孔好謙)이란 자도 가장 먼저 일본에 항복을 한후 한양공격의 길잡이를 자처하고 "조선 사람은 내 손으로 죽이겠다"면서 반역의 최선봉에 서는 민족적 패륜행위를 저지른다. 이러한 만고역적질이 경상도에서만 동시 다발적으로 연이어서 발생하였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풍신수길이가...
"경상도는 백색(=적극협조)으로 표기하여서 절대 죽이지 말라 하였고...전라도는 적색(=저항)으로 표기하여서 모두 죽여서 코를 베어 오라고 하였겠는가...!" 지금도 일본의 교토에 18만명의 코가 묻혀있는 조선인들의 코무덤이 있는데...대부분이 전라도인들의 코인 것이다.
1894년 일본군의 경복궁 난입과 경제적 약탈을 규탄하며 반봉건·반외세의 기치를 내걸고 시작한 동학혁명시에도 일본군의 공격을 받자마자 경상도인들이 허겁지겁 모두 도망을 가버린 탓에 전라도인들만 끝까지 항전하다가 25만명이나 전사한다.이때도 마지막 대전투시 일본군의 길잡이는 경상도 출신인 민병무란 자였다.
이와같이 역사적으로도 경상도는 "매국매족하는 망국적인 반역행위"를 중단없이 반복해서 저지른것은 물론... 외세의 침략이 있을 때마다 끝까지 저항을 한적이 단 한번도 없었지만... 전라도는 "매국매족하는 반역행위" 를 한적이 단 한번도 없었을 뿐만이 아니라 외세의 침략에는 언제나 홀로 끝까지 저항하여서 조국과 민족을 오늘날 까지 지켜냈다는 것이다.
자..!
1591년 3월 임진왜란 1년전에 일본에 파견한 통신사 2인이 귀국해서 정반대되는 내용의 보고서를 조정에 따로 제출하는데...전라도 출신인 통신정사(通信正使) 황윤길(黃允吉)은 일본이 반드시 침략을 할것이니..전쟁준비에 만전을 기하자고 하였지만 경상도 출신인 통신부사(通信副使) 김성일(金誠一)은 일본의 침략위협이 전혀 없으니 전쟁준비의 필요성이 없다고 하였다.
결과는 "경상도인 김성일"의 의견이 채택이 되어서 1년이라는 금쪽같은 시간을 아무런 전쟁준비없이 허송세월함으로서 끔찍하고 참혹한 임진왜란을 격게 된다. 전쟁중에도 백전백승을 하고 있던 "이순신장군"의 뒷통수를 처서 막강하였던 조선의 수군(=전라도 수군)을 일시에 전멸케한 자가 "경상도 수군통제사 원균"이였다.
임진왜란 내내...전력을 다해 싸워서 민족을 지켜낸 지역은 전라도였지만 일본군에게 가장 적극적으로 협조한 지역은 경상도였다. 전라도인들이 "한산도 대첩", "명량대첩", "행주대첩", 그리고 "제2차 진주성 전투"등 바다와 육지에서 수많은 전투를 승전으로 이끌기 위해서 홀로 엄청난 희생을 치루고 있을때..경상도인들은 조국의 뒤통수 치기에 여념이 없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경상우도 체찰사가 보고하기를"경상도에서는 요즈음 (임진왜란 중) 앞머리를 밀고 왜옷을 입고 왜적의 앞장을 서서 타도로 진출하여 노략질.방화,및 부녀 겁탈을 무심히 하는 경상도민이 무수히 많습니다. 이들의 소행은 포악하여 오히려 왜인들보다도 흉악한 바가 있습니다. 심지어 이 경상도인들은 충청,전라지방으로 진출하여 노인,아이,부녀자의 수급을 베어 왜적에 진상합니다." [충무공 난중일기中에서...]
밀양부사 공호겸(孔好謙)이란 자도 가장 먼저 일본에 항복을 한후 한양공격의 길잡이를 자처하고 "조선 사람은 내 손으로 죽이겠다"면서 반역의 최선봉에 서는 민족적 패륜행위를 저지른다. 이러한 만고역적질이 경상도에서만 동시 다발적으로 연이어서 발생하였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풍신수길이가...
"경상도는 백색(=적극협조)으로 표기하여서 절대 죽이지 말라 하였고...전라도는 적색(=저항)으로 표기하여서 모두 죽여서 코를 베어 오라고 하였겠는가...!" 지금도 일본의 교토에 18만명의 코가 묻혀있는 조선인들의 코무덤이 있는데...대부분이 전라도인들의 코인 것이다.
1894년 일본군의 경복궁 난입과 경제적 약탈을 규탄하며 반봉건·반외세의 기치를 내걸고 시작한 동학혁명시에도 일본군의 공격을 받자마자 경상도인들이 허겁지겁 모두 도망을 가버린 탓에 전라도인들만 끝까지 항전하다가 25만명이나 전사한다.이때도 마지막 대전투시 일본군의 길잡이는 경상도 출신인 민병무란 자였다.
이와같이 역사적으로도 경상도는 "매국매족하는 망국적인 반역행위"를 중단없이 반복해서 저지른것은 물론... 외세의 침략이 있을 때마다 끝까지 저항을 한적이 단 한번도 없었지만... 전라도는 "매국매족하는 반역행위" 를 한적이 단 한번도 없었을 뿐만이 아니라 외세의 침략에는 언제나 홀로 끝까지 저항하여서 조국과 민족을 오늘날 까지 지켜냈다는 것이다.
자..!
이제 대충.. "경상도 기질"과 "전라도 기질"에 대해서 느낌이 올것이다.음모와 조작에 뛰어나며 뒷통수 잘치고 배신 잘하는 쪽이 경상도라고 생각하는가... ! 아니면 ! 전라도라고 생각하는가 ...??
본래 뒷통수 잘치는 이들의 전형적인 수법과 특징이 자신들의 부정함과 부조리함를 면피하는 방법으로 오히려 피해를 당한 상대방을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중상모략을 하는 비열하고 야비한 방법을 즐겨 사용한다는 것이다.
즉..경상도인들이 입만 열면..아무런 근거도 없이 "전라도인은 뒷통수 잘친다"는 "...카더라식"의 허위날조를 일삼는 이유가 역사적으로나 혈통적으로 볼때 음모와 조작에만 병적으로 몰입하는 경상도인들의 기질과 DNA 탓이라는 것이다.
즉..경상도인들이 입만 열면..아무런 근거도 없이 "전라도인은 뒷통수 잘친다"는 "...카더라식"의 허위날조를 일삼는 이유가 역사적으로나 혈통적으로 볼때 음모와 조작에만 병적으로 몰입하는 경상도인들의 기질과 DNA 탓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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